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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교과서를 벗어난 윤동주의 아름다운 글들, 또 다른 시의 교과서가 되다

by 여히_ 2016. 2. 24.

교과서를 벗어난 윤동주의 아름다운 글들, 또 다른 시의 교과서가 되다 - 영화 '동주'


시를 좋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서점에 가면 시집코너를 훑어보곤 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내게 시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였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시'란 나의 수능 언어영역 점수의 몇%에 해당하는 과목이었으니까. 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수능 기출문제의 예제쯤으로밖에 안보였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도 시에대한 나름의 애착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내가 11살 되던 해에 나는 급작스럽게 경기도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간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해 하던 나에게 첫 상장의 기쁨을 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교내 시 대회였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감성충만한 어린이였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을 글로 적는다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려간 나의 시는 결국 교내 시 짓기 대회 1등을 움켜쥐게 했다. 한 번 상장의 맛을 본 나는 더욱 많은 글을 쓰고 싶었다. 이런 나의 열정(?)을 눈치채셨는지 담임선생님께서는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는 동아리 비슷한 걸 만들어보라고 권유하셨다. 나는 몇 날 며칠동안 동아리 이름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시나브로'라는 글쓰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원고지와 친해졌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서로가 쓴 시를 나눠 읽거나, 그 자리에서 시를 쓰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렇게 글에 익숙해지며, 마침내 장래희망란에 '작가'라는 꿈을 쓰게 되었다. 그 때부터 글은 쓴다는 것은 일종의 일탈이자 즐거움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걸 좋아했던 습관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지금은 비록 사회생활을 하며 필요한 지식들을 얻기 위한 책을 주로 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집이나 여행기같은 책들을 즐겨 읽곤 한다. 그리곤 이따금씩 블로그에 로그인 해 두서없는 생각을 주절거리고 있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나는 글에 관한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욕심이 뒤엉켜 있었다. 누군가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에 관한 글을 쓰면 질투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 글을 정독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남긴 시를 읽는 그 순간만큼은 동경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쏴대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이번 영화 '동주'는 당연히 큰 의미가 있던 것이었다.


영화 '동주'는 시대적인 느낌을 더 강렬히 표현하기 위해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가 흑백이었는데, 놀라운 점은 나는 마치 컬러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는 흑백이다'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만큼 스토리의 힘이 좋았고, 배우의 연기가 좋았고, 강하늘의 내레이션이 참으로 좋았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서점에 들러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다. 내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시라곤 '서시'나 '별 헤는 밤'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수험생의 시각이 아닌 단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읽어 내려간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웠다. 그렇게 시집을 슥 읽고 관람한 영화는 감동 그 자체였다. 내가 스쳐 지나듯 읽었던 그 시에 영상이 더해지니 감동은 배가되었다. 윤동주라는 사람의 삶 속에 시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가 시로 인해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과서로 배운 윤동주는 시인이라기보다는 독립투사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어떤 이들은 총칼을 들고 싸웠다면 윤동주는 '시'라는 무기를 들고 독립을 외친 강렬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만난 윤동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시인'이라는, 요즘으로 치자면 꽤나 소박한 꿈을 가진 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다만, 그가 태어나 자라온 시기가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그의 시에 시대적인 모습이 투영되었을 뿐, 그가 군중을 설득하고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시를 썼다는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그를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싶을정도로 말이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 생각을 간결한 시로 표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생각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단어와 언어를 떠올려서 100글자의 긴 문장을 10글자로 줄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윤동주에게 있어 시는 긴 글을 줄이고, 함축적인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느낀 그대로, 생각나는 그대로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적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윤동주라는 시인이 글을 쓰는 모습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시 한편을 읽으면서도 각각의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몇행부터 몇행까지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따위만을 공부했던 내가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시의 아름다움을, 윤동주라는 사람이 남겨둔 아름다운 글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영화 속에서 윤동주가 시를 쓰는 장면만 모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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