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in my life/생각

도서정가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by 여히_ 2014. 11. 21.

어제, 그러니까 2014년 11월 21일부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다. 도서정가제 자체는 원래 2003년부터 시행되어 왔으나, 그 운영 방법에 있어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기존의 도서정가제에서는 출간된 지 1년 6개월 미만의 도서에는 최대 19%까지 할인이 가능했고, 이 기간을 경과한 도서는 자체적으로 자유로운 할인폭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시행되는 도서정가제는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15%까지 제한을 두고 있어서 소비자들의 도서 구매가격이 소폭 상승할 여지가 큰 제도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는 사람으로써, 사실 도서정가제 시행에 대해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반면, 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도서정가제 시행이 유관기관 및 단체, 기업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시행하게 된 정책이라고 하는데 정작 도서를 구입하게 될 국민들에게는 그 어떤 의견도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서를 출판하고 판매하는 곳은 출판사와 서점이지만 결과적으로 책을 소비하게 되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꼼꼼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와 함께 한가지 더 걱정이 되는 것은 각 시군구마다 있는 도서관의 책 구매부담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도서관 또한 국민들의 세금으로 책을 구입하고 운영되는 곳인데, 구매하는 책의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책 구입 비용이 늘어날 것이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책이 싫든 좋든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세금이 나가는 것인데 이에 대해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부분 또한 아쉽다. 좋은 책은 공유하고 돌려읽어서 물자를 절약하고, 책을 많이 읽어 도서관을 지식의 보고로 만든다는 도서관의 본래 취지는 충분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도로 인해 도서관이 추가적으로 지출하게 될 금액에 대해서 정부는 어떤 대안을 갖추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장 내 주머니에서 책 구입비용이 더 많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내가 나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구입해서 읽는 것이므로) 영문도 모른 채 책가격 상승으로 인해 오른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반면에 시행 전날 수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구매했다는 현상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해둔 책을 이번 기회를 통해 구입해서 읽게 되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텐데, 이런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기회를 (반 억지지만) 주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 괜찮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매년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국제도서전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국제 도서전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출판사마다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온라인보다도 더 파격적인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이자 다양한 출판사들의 신간 등을 볼 수 있어서 관람하곤 했던 전시회였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로 인해 국제도서전에서도 대대적인 할인 행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할인해서 판매하는 행사까지 같이 하는 것인데, 아마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전시회까지 미친다면 책을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박람회를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무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책들은 지금도 꾸준히, 매일매일 출간되고 있다. 요즘처럼 인문학이 유행하는 시기에 인문학과 관련된 책이 매일 수십권씩 쏟아져 나온다.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분명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얻는 지식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의 시행이 과연 국민들이 책을 더 많이 읽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행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출판업계의 과잉경쟁을 막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인지는 그 의도를 잘 모르겠다. 과잉경쟁을 막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이라면 출판계쪽에만 어떠한 조치를 취해도 충분할텐데, 왜 애꿎은 국민들의 주머니가 더 가벼워져야 하는지 사실 100%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책의 질이 점점 좋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은 없다. 더 양질의 종이를 쓰고, 더 다양한 삽화들이 삽입되고 있다. 표지는 양장본으로 두껍게 만들어지고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교과서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의 교과서들은 모두 노란 재생지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도 있었다. (국어, 수학같은 과목들) 그러나 교육과정이 수 없이 바뀐 지금의 교과서를 보면 참 '잡지'스러워졌다. 참고자료와 사진들이 가득하고, 책 종이는 무거운 아트지류가 많아졌으며, 책값은 예전에 비해 더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의 학생들의 우수함에 비해 지금 중학생들이 더 똑똑해진 것은 아니다. 생각하는 수준 혹은 지적능력은 얼마나 화려하고 양질인 책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종이를 더 고급스러운 걸로 하고, 아무리 예쁘게 디자인을 하고 꾸민다 한들 내용이 알차지 않으면 소용없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출판업계에서는 책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책을 점점 더 화려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깔끔하고 얇은 표지의 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사진이나 그림 등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책들은 그 포맷을 그대로 유지해야겠지만 일부 소설이나 시집 등은 책을 그렇게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책값의 거품은 결국 출판업계가 만들어낸 것인데 그걸 소비자탓 (소비자가 더 좋은 책을 원하니 그렇게 만든것이다?) 을 해버리면, 우리는 할 말이 없다. 대놓고 더 좋은 책을 만들라고 시위를 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책값을 올리고 좋은 종이를 썼으면 결국 그 책음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에 책 읽는걸 좋아하고, 또 구입하는 책도 주변의 여느 사람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적다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편에 속하는) 사람으로써 이번 도서정가제 시행이 무작정 반갑거나 또 반대로 무조건 싫은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이 정책을 시행하기 까지 어떠한 연구를 했으며, 궁극적으로 정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설정하여 국민들을 설득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정부가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이번 정책이 과연 출판업계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불러올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 in my life >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벅스 두번째 다이어리  (0) 2014.12.14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0) 2014.12.07
내년이면 8년차  (0) 2014.11.19
two dots  (0) 2014.11.17
클래시 오브 클랜  (2) 2014.11.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