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m I?
블로그를 해야겠다고 시작한 건 2013년 9월, 부산에서의 짧았던 생활을 마감하기 두 달 전이었다.
당시의 나는 재직중이던 회사에서 퇴직을 권유받았고, 10월 말까지만 근무하는 것으로 나의 부산 생활은 종료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본디 서울에서 나고자란탓에 다른 낯선 곳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지낼지 많이 의아했던 시간이었고, 또 그만큼 힘든 시기이기도했다. 떠날 날짜를 받아놓고 출근하는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마음은 화창하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산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간다는 기록을 남길 수는 없을까?' 사실 그랬다. 일기든 사진이든 기록하는 걸 좋아했고, 영화티켓이나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 한 장 모으는 것도 좋아했던 나였다. 그동안 일에 치여, 상황에 치여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우며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블로그'였다. 그렇게 나의 티스토리는 부산에서의 기억을 담아놓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적이 명확해진 이후,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이 늘었다.
더 많은 곳에 가야했고, 남들은 못 보는걸 봐야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진을 전문가처럼 잘 찍는 것도 아니었고, 책이나 쓸만한 글솜씨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중간했다. 사진은 포토샵으로 갈음하고, 본문은 그간의 필적을 살려보려 애썼다. 부산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것, 부산에 가면 꼭 한번쯤은 들러봐야 하는 곳, 주로 이런 쪽에 자연스레 포커스가 맞춰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초창기 포스팅은 주로 부산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부산에 관한 포스팅을 몇 차례 올리고 난 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유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객관적이지 못한 경험을 단지 '공유하고 싶다'라는 목적으로 남겼던 것 뿐인데도, 이런 정보를 찾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부산에 거주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부산에는 자주 가보지 못한 타지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부산에 오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디서 무얼 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보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만한 태도로 보여질 수 있었지만, 나는 소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신을 달성하기 위해서 실제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부지런히 글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방문자의 수는 늘어갔고, 늘어가는 카운팅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점점 뿌듯해져갔다.
나는 그렇게 연말을 마무리했다. 온통 부산에 관한 것들로 채워진 블로그를 들여다보며 혼자 흐뭇해 하기도 하고, 추억과 감상에 젖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무언가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유익한 정보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카테고리가 늘어갔다. 관람한 영화나 공연에 대한 글도 적어내려갔고, 방문했던 전시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글을 적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유명한 사람들의 블로그를 찾아가 보면 무언가 한가지에 제대로 특화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삶을 두루두루 표현하고 싶었고, 남기고 싶었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두고있는 아홉수, 스물 아홉 살로써의 인생을 의미있게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무엇을 남길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한창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인터넷에서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서포터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기기증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할 수 있는 글을 포스팅 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평소 자원봉사나 기부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나는 자연스럽게 온라인 서포터즈에 지원하게 되었고, 마침내 온라인 서포터즈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낼 수 있었다.
사실, 단순히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라는 단체에 관심이 생겨서 지원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내 블로그에 정체성을 주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그 욕구에 불을 붙일 수 있을만한 계기를 찾고 있었다. 이에 맞물린 것이 바로 '공익'이었다. 당시 내 블로그의 하루 유입량은 약 150명 안팎이었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라도 공익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블로그가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결국에는 온라인 서포터즈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혹자는 블로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나 또한 수익을 내보기 위해 여러 애드를 알아보기도 했고, 접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다짐했던 나의 목표와 신념에 금이 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얼마 되지는 않지만 수익은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보다 공익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씩 내 블로그를 통해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찾아보다 보니 어느새 내 생활에도 하나 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온라인 서포터즈로 훈훈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취재를 나가는 일정이 생기게 됐고, 이런 활동에 뿌듯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다른 활동에도 눈을 돌렸다. 이후 굿네이버스의 시민 모니터링인 '굿모닝'에 지원, 합격하게 되었고, 서울 국제 음악제 SIMF의 온라인 서포터즈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그동안 약간의 관심만 갖고 있고 실천하지는 못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블로그를 통해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포스팅은 그동안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클래식 감상을 좋아했지만 실제 공연을 찾아가 볼 용기가 없었던 나에게 서울 국제 음악제의 서포터즈 활동은 새로운 취미가 되었고, 전시회 관람을 즐기던 나에게 국립현대미술관 모니터링은 더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굿네이버스와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는 그동안 실천하지 못했던 나눔과 사랑을 간접적으로나마 실천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블로그는 내 생활의 근간이 되었고, 지금은 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둘러보자면 카테고리가 한 가지 주제로 정의되어 있지는 않다. 시드니에서 살았던 시간동안 알게된 것들을 공유하는 것도 있고, 영화나 공연을 관람한 후기를 모아놓는 것도 있다. 프레젠테이션 기획이라는 직업과 디자인을 좋아하는 특성을 반영한 카테고리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있다. 이렇게 중구난방인 내 카테고리를 보며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네 블로그는 정체성이 없다."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 가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외려 나는 친구에게 반문했다. "너, 내 블로그 제목이 뭔지는 읽어 봤어?" 친구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내 블로그에 접속했고,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블로그의 타이틀은 '아름답다. 나의 아름다운 인생기록 - 스물 아홉'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공익적인 목적도 좋고, 내가 이런저런 문화를 즐긴다는 걸 자랑삼아 포스팅하는 것도 좋다. 직업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물론 좋다. 내 블로그의 컨텐츠가 이렇게 중구난방인 이유는, 그저 '나의 아름다운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스물 아홉의 내가 겪게 될 인생에 대한 포스팅을 남길 것이다
내 블로그의 카테고리는 '나의 인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인생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내가 궁극적으로 블로그에 바랐던 것이니 말이다
201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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