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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by 여히_ 2013. 3. 24.



우리는 사랑일까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1-03-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연애의 탄생에서 결실까지, 남녀의 심리를 꿰뚫는 놀라운 통찰력....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모든 장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지루한 장면마저 권태에 대한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물과 비극의 차이가 '구성plot'에 있다고 했다. 하여금 이것이 온통 무의미한 대사와 감정뿐인 바보같은 이야기가 아님을 믿게 해주었다.

 

 


  •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 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 그녀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잔을 따라서 천천히 마시다가 개수대에 쏟아버렸다. 벽시계를 힐끗 보고는 부엌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얼굴을 위이래로 쓰다듬었다. 입가에, 그러니까 입술 끝에서 북동쪽으로 1.5센티미터쯤 떨어짐 지점에 피부과적으로 급박한 위기가 감지되었다.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낮에 피지선이 막혔고, 그 결과 쌓여가는 압력에 반발하여 지금 원한에 찬 뾰루지가 솟구치려 하고 있다. 진원지 둘레는 다른 곳이 달리 뻣뻣하고 단단해, 아침이 오면 화산 폭발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뾰루지가 밖으로 터지지 않고 안으로 터져서, 며칠 후에 사라졌다가 미래를 위협하면 그게 더 문제였다.

  • 그녀는 문득 에릭에게 "나좀 안아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피자나 카레, 국수는 그만두고 "슬퍼서"라거나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울고 싶었다. 허약해서 기분이 엄습해서, 세상의 요구에 적절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을 바랐다. 다시 마음을 수습할 때 까지 누군가의 품에 조용히 안기고 싶었다.

  •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는 나쁠 수가 있다 -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다.

  •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릭은 처음 만날 날과 똑같이 복잡해 보였다. 그 첫 만남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안'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다.

  • 신뢰란 '부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신성한 사랑의 특성은 숭배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평범한 인간들이 숭배를 받을까? 신처럼 행동하는 것이 그 시발점이다. 그러면 신들은 어떻게 행동하나? 심술궂고 종잡을 수 없이. 신 그 자체는 아니었지만 예수의 행적을 예로 볼 수 있겠다. 예수는 수백 년이나 늦게 약속의 땅에 왔지만, 남루한 차림으로 나타나서 사람들의 기대를 무너뜨럈다. 갖가지 신기한 이적을 보이고 멜로드라마처럼 권력자들과 대결했을 뿐 선물도 별로 가져오지 않았다. 그 남자는 잠시 머물렀다가 곧 다시 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고, 수백만 추종자들은 그 남자가 돌아오기를 헛되이 기다렸다.

  • 흔히 명확함과 의사소통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나 일에는 묘한 매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불안감은 사회적인 압력과 기대에 직면해서 개인이 겪는 두려움이다. 내가 이 사람의 기대만큼 흥미로운 사람일까? 이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할까? 개인과 사회 사이의 민감한 막에 이런 불안감이 모이기 때문에, 털어놓지 못하면 외로움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쓸쓸하다. 누군가에게 "불안감이 엄습해오네요."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활발하게 "무슨 말이에요? 불안할 게 뭐 있다고 그래요?" 라고 대답하면 외롭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일을 비웃어버리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그러면 우리는 해학적인 기자와 함께 서로의 사고방식과 인류학적 관심을 나눌 기회를 앗겨버린다.

  •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 때로는 핸드브레이크를 채우고 사는 기분이에요. 그러면 어떤지 알잖아요. 운전을 하는데 왠지 차가 무겁게 느껴지면, 그제야 핸드브레이크를 풀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 우리에게 적당한 자아상을 반사시켜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해서.

  • 행복은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안는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명랑함에 수반되는 독립심,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피할 일이다. 불행을 추구하는 일은, 만족한 표정에 함유된 경쟁심을 피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살면서 상당 부분, 사람은 일관된 가치 체계 없이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도덕적 궁지에 몰렸을 때에는 망성일 일이 없을 것이다. 고급 일간지의 문학 지만에서 받는 문화적 죄의식이 없다면, 진정 어떤 책을 성실하게 볼까? 평생 외딴섬에서 살겠다고 짐을 꾸리기 전에, 과연 비평할 위치에 있을까? 권력과 정직 중 어느 것의 손을 들까?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 답을 진짜 알 수 있고 알고 싶을까?

  • 우리는 노골적인 선택 앞에서는 물러서버린다. 그런 선택을 하면 당연한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다시 말해, 부조리하지만 편하고 즐거운 수십 가지 일을 믿지 못하게 되니까. 스스로 지성적인 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외딴섬에 간 순간 공항 가판대에서 파는 대중 소설이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떨까? 자신을 청렴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천만 달러에 쉽게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 아무리 후줄근하고 마음 아파도, 우리 문화는 우리에게 보답없는 사랑을 친절하게 지켜보라고 가르친다. 직업 세계에서는 실패를 견디기 힘들지만, 사회는 정서생활에서 나오는 슬픔을 존중해준다.

  • 보는 것은 항상 다른 요소에 의해 보강된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거나 바라는 것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이미 인식하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가리고 힐끗 쳐다 볼 뿐이다.

  • 내 일부가 아직도 그이에게 밀착되어 있어. 하지만 내가 진짜로 그리워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미쳤나봐. "네가 그리워하는 건 사랑이야."

  • "키스해도 될까요?" "내가 당신에게 돌려줘도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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