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portance of first impressions.
연주회가 끝나고 걸어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만 좋아했구나.' 라는. 사실 내가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된 건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아마데우스'를 시작으로, 더 이상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가장 처음 접하게 된 클래식이 '코리아 심포니'였다. 수 많은 악기들이 무대를 가득 메운 그 모습을 보며 소름끼칠 정도로 활홀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에도 찾아서 듣는 공연의 규모는 대부분 컸었다. (혹은 유명한 음악가의 특별공연이라던가) 그러다 이번 공연을 통해 한 가지 악기를 한 사람만이 연주하는 공연을 보게 된 것인데, 느낌이 굉장히 달랐다. 큰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는 가령 바이올린만 하더라도 열댓명이 넘는 분들이 연주를 하다보니, 개중 한두분 정도가 살짝 실수하거나 파트를 놓쳐도 나같은 사람들은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앙상블 선의 공연은 달랐다. 한 가지 악기를 한 사람이 책임 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고 가야한다는 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악기 하나하나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연주자분들의 모습 또한 오케스트라에 비해 열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가까이에서, 악기를 품에 꼭 안은 채 연주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한 기분도 들었다.
원래 이번 공연에서는 시 한편이 낭송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내심 시낭송에 대한 호기심도 컸다. 하지만 웬일인지 시낭송은 진행되지 않았고, 바로 본 공연이 진행되었다. 연주를 듣고 있노라니 시낭송을 못들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흐려졌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될까봐 시낭송을 하지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시낭송을 하지 않은 편이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시낭송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대체 무슨 시를 낭송하려고 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라며 팜플렛을 한번 더 들춰보게 되었고, 심지어는 모바일로 해당 시에 대한 해석을 검색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시를 낭송해주는 것 보다 더 큰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고, 시낭송을 하지 않은 것은 전략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도 생각보다 좋은 판단이었다고 보여졌다.
사실 굳이 시낭송이 아니어도 이번 공연은 '치유'의 느낌이 들었다. 은은하고 감상적인 느낌의 곡 연주가 끝나고 이어진 심장을 울리는 듯한 곡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에 집중하며 공연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에, 공연을 마칠때까지 설레었다.
앞서 언급했던것 처럼 그 동안에는 큰 규모의 공연만을 보다보니 공연장소가 주로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대부분이었다. 객석의 수도 많고, 층도 나누어져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금호 아트홀이라는 곳은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봐왔던 공연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 놀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공연장의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 공간에서 어떤 소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 아름답고 진정성있게 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연장의 크고작음이 감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향관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내가 캐치하기엔 조금 어려운 부분이라 함께 공연을 관람한 지인의 의견이기도 하다. 소리라는 것은, 무대에서 청중들의 귀로 넘어오기까지 부딪히는 다양한 것들 (관객, 객석, 벽, 바닥, 천정 등)에 굉장히 민감한데 금호아트홀은 공연장의 내부 전부가 나무로 되어있다보니 소리의 반사나 이런 것들이 다른 공연장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무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객석까지 도달했을 때 그 느낌이 조금 변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그 음을 더 제대로 듣고 싶어서 양 쪽 귀에 손을 동그랗게 말아 붙이고 음악을 듣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울림이나 크기가 더 커진 연주를 들으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공연장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신선한 공연이었다
.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연주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각 1명 (상황에 따라 2명)이다보니, 그들은 단 한순간도 열정을 놓치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연주에 열중했다. 그 음악들을 연주하기 위한 자신의 소리는, 오롯지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집중하고, 더 큰 열정을 부렸던 것 같은데, 이런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사람의 손이 저렇게 움직이는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쉬지 않고 움직이던 왼손과, 한 소절 한 소절을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오른손의 모습, 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연주하는 연주자분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볼 수 있어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이번 공연을 맡은 '앙상블 선'은 지난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익을 추구하는 공연 외에도 사회에 클래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연주회를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어느 한 오케스트라, 어느 한 악단, 어느 한 그룹에 소속되어 연주하는 그들이었지만 클래식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좋은 자리를 끊임없이 마련하는 열정과 노력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꼭 오케스트라가 아니어도 이렇게 소리와 사람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연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자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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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의 후원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 (artinsight.co.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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