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 76년의 사랑을 일깨워준 아름다운 인생 한 편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오랜만에 눈물 콧을 쏙 빼는 영화(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다. 그 동안 화려한 블록버스터 혹은 액션 등에만 치우쳐 있던 것 같은데 잔잔하면서도 마음의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독립영화이자 예술영화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아마 예전의 <워낭소리> 이후 이렇게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관람객층 또한 굉장히 다양했던 것도 흥미로웠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 관람하기에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스토리였음에도 불구하고, 76년평생을 함께 보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이 닮긴 영화라는 점에서 어린 친구들의 관심도 늘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담긴 뜻이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안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다만, 이러한 장르의 영화가 더 넓은 세대층에 걸쳐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자리에 앉기 전에 주머니에 휴지가 있었는지부터 확인했어야 했다. 없었으면 챙겼어야 했다. 눈물이 흐르면 옷깃으로 닦아내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고, 결국 미어지는 가슴을 붙든 채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때까지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강을 건너 가셨다는 것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슬퍼서 운 것만은 아닌것 같다. 마음 속을 요동치며 꿈틀거리는 그 무엇 - 아마 대부분 '효'라고 표현할법한 - 때문에 더 울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외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나의 외할머니는 경기도 파주에서 막내인 엄마까지 자식 아홉을 내리 사랑으로 키우시며 지내오셨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와 1년 정도 떨어져 지낼 때가 있었는데, 이 때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케찹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을 나무라면서도, 매일같이 케찹을 먹어 없애는 나를 위해 새 케찹을 늘 냉장고에 쟁여두시곤 했다. 어느 날은,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뜨겁게 달궈진 오토바이에 종아리를 크게 데여 울며 집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화상을 입고 아파하며 울고 있는 나에게 외할머니는 냉장고에서 김치 한 쪽, 소주 한 병을 가지고 나와 내 다리에 부어주셨다. 일종의 민간요법이었는데, 소주를 들이부은 자리에 김치를 척 올려놓고 거즈로 꽁꽁 싸매시고는 어린 나를 업고 동네 의원까지 부랴부랴 달려가셨다. 할머니의 빠른 응급처지 덕분에 나는 꽤 아픔 없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고, 손바닥만했던 화상자국은 이제 거의 없어져 희미해졌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외할머니의 품에서 자랐기때문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나에게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외할머니는 추운 겨울날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 넘어지셔서 동상에 크게 걸리셨는데, 연로하신 탓에 완치가 어려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야위셨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막내딸로, 누구보다 외할머니를 아끼고 따르고 보살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자연스레 외할머니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픈 채로 누워계시던 외할머니 곁에 누워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할머니를 보러 갈 때마다 장판 밑에 숨겨두었던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서 용돈삼아 주셨는데, 그 돈을 어디에 써버렸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마지막까지도 할머니는 나를 토닥여 주셨다. 아직도 그 때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이 외에도 외할머니와 지내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며 외할머니가 떠올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우리 외할머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를 관람한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눈물지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의 어머니 혹은 자신들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 슬픔을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훌륭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억지스럽게 할머니와 할아버지 곁을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까지 담았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할아버지가 떠나는 슬픔을 담아야 했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기에 관람객이 더 많이 감동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화 한 편 관람했다고, 내가 할머니의 슬픔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또한 이 분들의 아름다운 인생 한 편에 대해 왈가왈부할 도 없다. 다만, 76년동안 이어온 그분들의 오랜 사랑이 매일매일을 얼음장을 걷고 있는 듯한 요즘 시대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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