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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린 사나이 - 허영만 전시회 '창작의 비밀'

by 여히_ 2015. 6. 19.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린 사나이, 허영만의 ‘창작의 비밀’ 전시회가 한창 열리고 있습니다. 7월 19일까지 개최되는 이 전시회는 대한민국 만화계를 대표하는 허영만의 그동안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로,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즐겁게 관람했다는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화 자체를 넘어 문화와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소중한 보고와도 같은 이번 전시회는 단지 한 사람의 만화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허영만 작가의 지문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전시장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에게 허영만의 작품은 굉장히 친숙합니다. 당대 히트를 쳤던 영화 ‘비트’ 뿐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각시탈’, 어린이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날아라 슈퍼보드’ 등 오랜 시간 동안 국민 곁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다양한 작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영만의 작품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던 만화산업에 대해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수십 년 전 까지만 해도 만화책은 그림이 그려진 책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여가생활의 일부를 책임지는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옛 시절에는 만화방에서 일어나던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요즘의 만화시장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손쉽게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웹툰’이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웹툰 시장은 이제 그 분야와 범위가 넓어졌고, 만화를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의 조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허영만 작가 또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온라인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만화책으로 허영만을 접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웹툰이라는 또 다른 방법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완벽한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연구하던 허영만 작가의 모습


한 때는 만화라는 것이 좋지 않은 문화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대를 풍자하거나 비평하는 내용들돌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대적 고초를 겪었던 적도 있었지만 허영만 작가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만화 또한 제대로 인정받아야 하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여겼던 그는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물, 배경, 시대적 정황에 상상력까지 더해진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인정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기에 더 많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그의 발자취를 여럿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자료 수집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단 하나의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수고를 했는지를 다양한 전시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어 전 국민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인 ‘식객’은 만화가로써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 대한민국의 진정한 맛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높이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탄탄한 스토리와 디테일한 구성 덕분에 식객은 드라마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많은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하기도 했었습니다.



전시의 주제 자체가 ‘만화’이다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굉장히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전시장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허영만 작가의 최근 작품을 알고 있는 어린 세대층부터 ‘날아라 슈퍼보드’와 같은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접했던 20대, 영화 ‘비트’와 같은 작품을 통해 만화의 영화화를 직접 경험했던 지금의 30대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허영만이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그가 지나온 발자취를 직접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전시장 치고는, 꽤나 조용한 분위기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전시장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 아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니 묵직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도 종이 위 그림을 벗어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 ‘각시탈’은 실제 만화책으로 제작되었던 초판 원고가 전시장 한 공간을 둘러가며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순서에 따라 만화책을 꼼꼼히 읽는 모습을 보니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일개 만화에 지나지 않는 장르였던 만화가, 누군가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하나의 예술장르로써 제대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접했던 다양한 만화, 애니메이션 전시회들은 팀 버튼, 지브리 스튜디오처럼 대부분 외국작품들이었습니다. 이번 전시가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허영만이라는 사람의 국내 작품들로만 전시가 기획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화산업의 발전에 있어 세계의 트렌드에 맞춰 발전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그 동안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작가 한 사람이 만화로 인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이번 전시는 분명히 더 큰 의미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만화가를 넘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있는 허영만 작가. 그러나 그는 단지 그림으로만 승부를 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전시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벽에 붙어있던 만화 속 한 구절을 보고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의 숫자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이 말을 떠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을 허영만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왠지 그동안 쉽게 생각했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 리뷰는 허영만 전시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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