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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my life/문화

[비비안마이어 전시회 - 내니의 비밀] 사진은, 그저 사진으로만.

by 여히_ 2015. 7. 6.

사진은, 그저 사진으로만.


나는 사실 사진이라는 분야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잘 찍는 사람도 아니며, 사진을 자주 찍는 취미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관람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사진 전시회'였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왠만한 장르를 불문하고 내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보는 성격탓에 보게되었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온라인 상에서 등장한지는 사실 몇 달 정도는 되었다. 처음 이 사람에 대해 접했던 것은 그녀의 일생에 관한 기록을 담은 영화(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개봉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제네시스'라는 영화를 통해 사진에 대해 이야기 하는 다큐멘터리 형태의 영화가 어떤 스타일인지를 한 번 경험해 봤던 터라 이번 영화도 선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영화를 꼭 봐야할 명분이 없기에 영화가 개봉되었을 시기를 놓치고 관람하지 못했었다. 


약간의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금방 잊었었다. 그러다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생겼다. 바로 '단 한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공개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작품들'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이번 전시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아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이 작품이 되길 바라며, 사진을촬영함에 있어 자신만의 주제나 감성, 기법 등을 담아서 촬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는 달랐다. 15만통에 달하는 필름을 단 한번도 인화한 적이 없었다는 독특한 점이 나를 전시장으로 이끌었다.


베일에 감춰진 고독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1926-2009)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비비안 마이어는 1951년 뉴욕으로 돌아와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마이어는 1956년 시카고에 정착한 이후 2009년 세상을 떠날 때가지 보모로 생계를 유지하며 생활하였다. 


2007년 존 말루프는 우연히 시카고의 한 동네 경매장에서 마이어의 놀라운 작품들을 발견한다. 말루프는 역사 자료를 수집하던 중 다량의 프린트와 네거티브 필름, 슬라이드 필름 (상당수가 현상되지 않음) 과 슈퍼 8mm 필름을 값싸게 구입하게 되었다. 베일에 감춰진 고독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느느 사진 12만장을 찍었다고 한다. 그녀는 30년간 꾸준히 사진을 찍어오면서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코닥 브라우니 박스 카메라와 롤라이플렉스, 라이카를 목에 걸고 틈틈이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를 활보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성인이 된 마이어가 돌보았던 아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이어는 교양 있고 열린 사고의 소유자로, 관대하면서도 무뚝뚝했다고 한다. 


마이어의 작품 속에는 일상 속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호기심과 행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이 배어있다. 그리고 표정, 태도, 옷차림, 유행하는 액세서리와 소외계층의 삶에 대한 관심도 나타나며, 몰래 찍은 사진과 실제로 만나서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을 통해 미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가운데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2009년 4월 마이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사망하였다. 그녀는 19년 가까이 겐즈버그 일가에서 보모로 일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 보모로 돌봐주던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의 소지품과 대부분의 필름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창고 보관료가 연체됨에 따라 2007년 압류당한 후 존 말루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행정서류상 오스트리아계 헝가리인이자 프랑스인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스의 오트잘프의 샹소르와 아시아, 미국에서도 그녀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사진에 입문하게 된 배경과 예술가로서의 행로는 연구 과제로 남아있다. 



‹Self-Portrait›, undated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전시장에서 만난 사진은, 정말 그래 보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와닿았다. 관람객중에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섞여있는 듯 했다.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고 구도는 어떤지, 저 사진 속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등을 관찰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닌데, 어떤 특정한 장면을 찍기 위해 연출한 사진들도 아닌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진들을 분석하며 봐야 할까?' 물론 사진이라는 장르가 담고 있는 깊이감에 대해서 이렇다할 정의를 내릴 수 있을만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사람의 가장 평범한 눈으로 굳이 분석해가며 봐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생각이 스친 다음부터 모든 사진을 그저 그 사진을 찍었던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보고자 했었다. '왜 저 사진을 찍었을까'가 아니라 '지금 이 장면을 찍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들과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자연 속에 숨은 아름다움 혹은 사람의 내면을 이끌어 내는 그 어떠한 것들 - 하나하나 분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진을 마주하는 것이 즐거웠다. 비비안 마이어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상상하니 사진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비비안 마이어의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된 사진들의 대부분은 시선보다 낮은 높이에서 위쪽을 향해 있는 것들이 많았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용했던 여러 카메라 중 '롤라이플렉스'라는 기종으로 촬영된 것들이 그러한 구도가 많았다. 스트랩 목에 걸어 허리춤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이런 구도가 나온 것 같다. "사진 찍겠습니다~" 하며 인위적으로 찍어낸 것이 아니라, 당시의 눈 앞에 있던 모든 것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했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요즘의 사진 찍는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누가 더 좋은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찍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 같은 요즘같은 분위기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언뜻 보면 사진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는 이런 사람들과는 철저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혹은 자신이 남겨보고 싶은 그 장면들에 대해 특별한 기교나 기술이나 비싼 장비 없이도 그 모습을 잘 담았다. 전시장 한 켠에 틈틈히 적혀있던 설명 중에는 그녀가 사용한 카메라에 관한 것들도 있었는데, 당시의 해당 기종들은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해당 기종들이 비싸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어떤 것으로 찍느냐, 무엇을 찍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찍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공개된 지는 채 10년이 되지 않았고, 그의 사진이 얼마나 예술적 혹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연구중이라고 한다. 그녀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를 그저 한 장의 필름에 담았을 뿐인데, 우리가 그 사진 한 장에 너무 많은 가치를 억지로 구겨넣으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과연 그녀가 12만장이 훌쩍 넘는 사진을 찍으면서 그 모든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가장 깊이 있는 모든 의미를 담으려고 했었던 것일까? 사진은 사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전시회였다. 


비비안 마이어 전시회 <내니의 비밀>


전시장 : 성곡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전시기간 : 2015년 7월 2일 - 9월 20일 (매주 월요일 휴관, 10: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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