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클래식 락 심포니 2014

아직, 아마추어

클래식 락 심포니

네이밍은 중요하다. 

어떠한 이름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특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예술의 전당은 나에겐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었다. 심지어 대중문화는 가벼운 예술로 취급하여 무대에 올리지도 않는다는, 뭐랄까 예술계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키는 그런 곳으로 느껴지는 곳이 예술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지난 3월인가 4월경,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는 락과 클래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 예매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매일매일 어떤 공연을 볼까 눈여겨 보고 있던 나에게 락과 클래식의 만남은 정말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리고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예매를 했다. 그러나 모두가 비탄에 빠졌던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예정된 날짜에 공연되지 못했고, 급기야 예매 전원이 환불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연이 취소가 된 것이 아니고, 날짜가 미뤄진 것이라고 하기에 나는 다시 예매를 하고 이 공연을 꽤나 목빠지게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인 8월 19일 화요일 저녁 8시,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그들을 만났다. 사실 팜플렛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 이 공연에 누가 나오는지, 어떤 음악을 연주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미처 사전에 확인하지 못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펼쳐든 팜플렛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과 연주될 음악들에 대한 소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지현수'였다. 응? 사진을 보아하니 왠지 '지현우'와 비슷하게 생겼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지현우의 형 되시는 분이었다. 그룹 넥스트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고, 다양한 곡들을 작곡 및 편곡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라 했다. 그래서 더 큰 기대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드디어 공연은 시작되었고, 1부의 시작으로 영화 스타워즈의 테마곡이 연주되었다. 

80여명에 이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악단의 빠르고 경쾌한 연주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기엔 최상의 선곡이었으며, 앞으로 이어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공연은 장르를 뛰어넘는 선곡과 연주로 시작되었고 1부는 익숙한 멜로디의 곡들로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부. 앞서 언급했던 키보디스트 '지현수'와 '브릭'이라는 그룹의 보컬을 맡고 있는 '허규'라는 가수가 함께 공연을 이끌어갈 순서였다. 무대 위에는 3가지의 건반악기들이 올라왔고, 해설자의 소개로 지현수씨는 무대 중앙으로 나와 인사를 한 뒤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 보는 낯선 악기와 낯선 연주법이었기에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신기하게 구경할 수 밖에 없는 무대가 이어졌다. 그렇게 몇 곡의 연주가 흘렀고, 이윽고 허규씨가 나와서 노래를 할 차례가 되었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앞서 나온 지현수씨가 해금 연주자와 마지막 리허설을 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어느정도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오늘 공연을 위해 가족도 오고 (지현우가 왔음) 나름대로 의상도 갖춰입고 나머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도 기존에 호흡을 맞췄던 걸 살려서 잘 연주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규씨의 멘트는 나를 멘붕에 빠트렸다.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허규는 "오늘 일정이 갑작스럽게 잡힌거라 메이크업도 하지 못했고, 그래서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멘트는 비단 메이크업이나 의상의 문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가 첫 번째 곡을 부르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기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고음은 전혀 올라가지 않았고, 꽉 메인 목소리는 저음에서만 맴돌 뿐, 청중들에게까지 그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심지어 코러스로 함께 나온 3명의 여인들은 예술의 전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흡사 밤무대와 어울리는!!) 짧고 검은 핫팬츠에 살색 다리를 훤히 내보이며 싸구려 동작으로 코러스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허규의 목소리보다 코러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도 했고, 전반적으로는 마이크 테스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허규의 목소리는 개미만하게 들릴까 말까 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3,4월부터 기획되고 준비되어오던 공연이다. 

비록 사회의 분위기에 의해 공연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래도 팜플렛에 엄연히 이름이 들어와 있는 걸 보면 최소한 3일 전에는 이번 공연에 대해 알았을 것이고 준비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허규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너덜너덜한 느낌의 하얀 셔츠에 뭔가 빈티지해보이는 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려진 마이크를 마치 어린애처럼 흔들어 제끼며, 시선은 관객보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향할 떄가 더 많았다. 노래의 어느 소절을 어떻게 불렀는지 지금에 와서 전혀 생각이 나질 않을 정도로 그의 공연은 최악이었다. 심지어 클래식을 배운 수 많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연주'는 말 그대로 싸구려 노래방의 반주급으로 전락시켜버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게 과연 프로페셔널한 가수이자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들었다. 

사실 그 전에 했던 지현수의 공연도 100% 만족한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노력이라도 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라도 있었다. 하지만 허규는 뭔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인가? 가수인가? 어디서 뭘 하다 왔길래 저런 차림새인가? 두 눈을 의심하고 두 귀를 의심했지만 허규는 진정으로 프로페셔널하지 않았고, 예술의 전당에는 더더욱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글의 맨 첫 부분에 언급했듯이 예술의 전당이라는 곳은 예술장르라고 해서 아무 공연이나 올라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락과 클래식의 오묘한 콜라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해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공연이라 판단되었기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인데, 이 공연을 준비한 수백명의 사람들의 노력을 허규라는 한 사람이 망쳐버린것이다.

이전까지는 허규라는 사람이 어느 밴드에서 뭘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이제는 누군지가 궁금하기보다는 그냥 일단 그들의 음악은 별로 듣고싶지가 않았다. 본인의 노래가 아니라고, 본인이 속한 그룹으 콘서트가 아니라고 해서 대충 불러도 되는 그런거라고 생각했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청중이 그정도로 느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 년 열리는 공연이고, 벌써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기획공연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