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보수동 헌책방골목

부산 보수동에는 유명한 헌책방 골목이 하나 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자신의 책을 다시 사는 장면은 이곳에서 촬영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형서점이 늘어나고, 온라인으로 서적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남은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쫒아 가는 사람들에게 헌책방은 다양한 기억의 조각을 던져주는 곳인 것 같다. 

헌책방골목은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가기에 어렵지 않고, 접근하기 쉬운 위치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골목 입구로 들어서면 헌 책이 수북히 쌓여 있는 서점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골목의 이곳 저곳을 따라 늘어선 책을 곰곰히 보고 있자면, 각각의 서점마다 조금씩 다른 주제가 있다는 것도 느껴진다. 다양한 책을 장르 구분 없이 모아놓은 곳이 있는가 하면, 의학 전문 서적이나 외국 수입 서적, 아동 서적 등을 전문으로 하는 곳도 있다. 그 중 아동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한 책방 앞을 지나게 됐는데, 내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두세가지의 전집이 있어 내심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그 책이 또 어딘가에서 어떤 어린이에게 읽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재밌기도 했다. 그 아이는 이 책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왠지 즐거웠다. 

책방의 규모는 각기 다르다. 지하와 지상으로 나뉘어 인테리어 또한 잘 정돈되어 있는 곳도 있는가 하면, 작은 규모에서 전문서적을 파는 곳도 있다. 내가 들렀던 곳은 지층과 지하 1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한 켠에는 작은 커피숍을 마련해 놓은 곳이었다. 부산에 있는 헌책방이다보니 아무래도 부산의 역사에 대해 담겨있는 책들이 모여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왠지 한권쯤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헌책방을 그냥 지나치기 참 어렵지 싶다. 한참을 둘러보다 고른 책은 평소에도 읽고 싶었던 시집 한권이다.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집인데, 유명세에 비해 읽은 적이 없다는 걸 하나의 흠으로 생각하고 있던터라 이 책을 보자마자 구입하게 되었다. 지금은 서적의 가격이 7500원까지 올랐지만, 헌책방에 있는 책의 가격은 4000원이었다.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한 듯, 감명 깊은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시집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골목을 한참 헤메이다 어느 한 켠에 지긋이 앉아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한 커피숍을 발견했다. 외관상으로도 주인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느낌이었고, 이런 곳이라면 안락하게 커피 한잔에 시집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을 들여놓은 그곳에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LP음반부터 곳곳에 놓인 소품들이 나를 맞이했다. 

조용한 평일 오후에 아늑한 커피숍에서의 라떼 한잔과, 좋은 음악과, 시집. 큰 맘 먹고 일을 그만둔 백수(?)정도는 되어야 누릴 수 있는 이 호사가 너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 골목 사이를 가로지르는 몇 개의 골목을 보았는데, 곳곳에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글귀가 적혀 있던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골목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어린왕자'삽화와 문구가 적혀 있는 골목을 보고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왠지 기분이 좋기도, 또 한편으로는 참 쓸쓸하기도 했다. 

꼭 무언가 책이 필요해서 헌책방 골목을 찾아간 건 아니다. '헌책방'이라는 단어,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너무 궁금했다. 아날로그의 끝자락, 디지털의 시작에서 태어나 아날로그의 감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런 공간이 존재함으로 인해 감성이 무엇인지, 옛 것의 느낌은 또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찾아가는 방법

주소 :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1가 130-3 (보수동책방골목 문화관)

지하철 : 토성역 1번출구 150m직진 -> 부산은행 끼고 우회전 -> 900m 직진

버스 : 135번, 40번 81번, 186번 86번 등 (제일은행)

*지도어플을 이용하여 찾아가실 것을 추천합니다.